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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을 활성화해야 한국의 출산율이 올라간다 - 미국이민자의 시각즐겁고 행복한 미국 생활/일기 + 여행 2024. 5. 3. 06:11
서울에서 28년을 산 후,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다른 나라 (=미국)에서의 삶의 모습들이 어떤지 조금씩 배우다 보니, 한국엔 없는, 사람이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필요 조건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나의 경우, 서울에 살 땐 결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는데,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필요 조건"의 장점을 누리다보니,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고, 그 결과 줄줄이 (....계획하진 않았지만 연년생으로) 아기 둘을 낳고 키우게 되었다.
사람이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것. 한국엔 딱히 없고, 미국에만 있는 것은 바로 - 큰 도시 뿐만 아니라, 활성화되어있는 중, 소형 / 시골 도시이다. 지역적 다양함은 삶의 다양함에 큰 영향을 주고, 이 삶의 다양함이 출산율을 올리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구, 부산, 천안, 경기, 분당/판교 등등 한국에도 서울 외에도 크고 좋은 도시들이 많지만, 그 활성화 된 정도가 미국에 비해선 훨씬 낮은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서울 및 근교에 사는 인구가 거의 인구의 절반이다.
서울 및 근교에만 크고 좋은 직장/회사들이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 근처에서 옹기종기 살아야한다. 그러니 집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교통 체증이 날로만 심해진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가까이에서 많지 않은 자원을 두고 싸워야하니, 경쟁이 심해지고, 교육열이 끓어넘치고, 정해진 성공 루트 (좋은 대학 - 좋은 직장 등)가 더더욱 견고해지고, 서로 눈치를 보고 비슷하게 하느라 과소비가 심해지고, 삶에 여유가 없어진다. 한 곳에 모여사니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다들 비슷해진다. 삶의 모습이 획일화되니, 메인스트림을 벗어난 분야엔 사람도, 돈도, 시장도, 인프라도 없게 된다. 그래서 메인스트림을 쫓은 것 외에 다른 걸 하기가 확실히 힘들다. 그러니 다들 똑같은 걸 해야하니까 경쟁이 더더욱 심해지는 연쇄 반응이 무한 되풀이된다.
그렇다고 이런 직장 경쟁, 과소비 경쟁, 교육 경쟁, 성공 경쟁이 미국엔 없냐? 당연히 아니다. 맨하탄같은 큰 도시에서 살면 삶의 질, 삶이 비쌈이 서울보다 더 하면 더 한 것 같다. 그치만 큰 차이점은 - 미국에서는 그게 싫으면 다른데 가서 살면 된다는 점이다. 맨하탄같이 큰 도시에서 안 살아도 좋은 직장에서 돈 많이 벌면서 여유롭고 풍부한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서울을 떠나면 비슷한 수준의 연봉, 문화, 인구 등을 구하기가 미국만큼 쉽지 않다.
경제/문화적인 측면을 내가 사는 도시와 나의 경우로 미국 중/소형 도시의 모습을 설명해보겠다.
내가 사는 도시는 도시 자체는 652,000명 정도의 인구를 가졌고, 미국에서 26번째로 큰 도시이다. 도시를 주변으로 근교도 크게 발달 되어있어서, 근교를 포함한 metropolitan area의 인구는 2,200,000명 정도이다. 나 또한 큰 도시 주변의 거주지역에 살고 있다.
나는 자산총액 130조 정도의 (예전엔 더 많았겠지만, 요즘엔 회사 주식 가격이 말이 아니라...) 나스닥 상장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아주 유명한 기업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 외에도 비슷하게 크고 유명한 대기업이 근처에 하나 더 있다. 그 외에도 큰 대학 시스템, 큰 병원 등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회사가 매우 많다.
회사가 돈을 잘 주는 것에 비해서, 대형 도시가 아니다보니 부동산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다. 나의 경우, 현재 사는 주택을 ( 방 3개 있는 것 치고는 꽤 큰 편에 속하는) 2020년에 한국돈으로 6억 5천? 정도 주고 샀다 (환율을 뭐로 쓰냐에 다르겠지만, 달러로는 $530,000). 비싸긴 하지만, 서울 집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대기업에 다녔는데, 지금 미국회사에서의 연봉이 훨씬 크기 때문에, [집값 / 연봉] 비율을 생각하면 반의 반도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과 나 둘 다 일하면서 빡세게 절약하고 저금해서, 미국에 이민온 지 5년만에 큰 어려움 없이 집을 살 수 있었다 (물론 대출끼고). 그리고 현재는 아기가 둘이라서 남편이 회사를 관두고 주부가 되어 아이들은 돌본다 (미국은 어린이집 비용이 워낙 비싸서). 물론 남편의 퇴직으로 더더욱 절약하면서 살아야하지만, 나 혼자의 벌이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서울이나 미국의 큰 대 도시에서 살았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상황이다.
문화적으로 -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엔 엄청나게 쿨한 식당 / 까페 / 바 등은 없지만, 충분히 힙한 곳은 많다. 이 지역에서 산 지난 6년동안 가 본 힙한 곳보다 아직도 가봐야할 곳이 훨씬 더 많다. 진짜 진짜 힙하고 미국 전역에서 유명한 식당, 까페 등을 가려면 20분만 차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가면 된다. 문화적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좋은 오케스트라와 좋은 미술관이 없다는 점이다. 이 둘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000001%도 안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한가로운 동네게서 살다보니 즐길 거리가 너무 다양하고 많아서, 큰 도시에 있는 쿨한 식당, 힙한 까페, 멋진 전시 안가도 아아아아아아아무런 지장이 없다. 산에 가서 백팩킹도 해야되고, 호수에 가서 카약도 타야되고, 베이킹도 해야되고, 등산도 해야되고, 공원 깨기 (동네에 있는 모든 공원에 가고자 한다)도 해야되고, 집 관리도 해야되고, DIY 프로젝트도 해야되고, 애들이랑 수영장도 가야되고, 등등 할게 너무 많다. 오히려, 아이들과 하고 놀 것이 대도시보다 한적한 곳에 많기 때문에 (아웃도어 관련 놀이 및 스포츠), 진짜 아이들 키우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직도 너무 도시적이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더 멀리있는 곳에 가서, 산과 밭과 농장과 과수원 사이에서 살면 된다. 그 곳에 가더라도, 편의 시설, 슈퍼 등을 힘들지 않게 갈 수 있고, 원하는 시골 라이프, 전원 라이프 스타일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경제적, 문화적 측면을 벗어나서, 삶의 전반에서 활성화되어있는 중/소형 도시, 시골 도시가 많으면, 사람들의 삶의 다양성이 증가한다. 그리고 삶의 다양성이 사람들의 인생을 정말 풍부하고, 여유롭게 만든다. 왜냐하면 삶이 다양하면 아이를 키우기 / 아이가 자라기 힘든 환경 - 교육열, 입시전쟁, 취업전쟁, 승진전쟁, 내집마련전쟁, 힙하기 전쟁 등 모든 것의 정도가 매우 줄어들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고 싶으면, 농사 지으면서 충분히 돈 잘 벌고, 잘 먹고 살 수 있다. 한국처럼 농촌에 노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친구도 사귀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잘 살 수 있다. 대학을 안가고 블루칼라 직업을 가져도, 일하고, 사업하면서 충분히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교통 체증도 훨씬 덜 하고, 집 사기도 훨씬 수월하다. 굳이 대학을 안가도 할 수 있는 직업/일 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으니, 교육열, 입시전쟁, 대학전쟁의 불도 가라앉는다.
물론, 이렇게 평생 및 몇 대를 살아온 상황에서 갑자기 서울 외의 지역이 활성화된다고 갑자기 삶의 모습이 다양해지진 않겠지. 하지만, "상황"이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지방의 활성화를 먼저 조금씩 이루면, 사람들의 삶도 조금씩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하지만), 지방을 활성화하기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란걸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쉽게 알 수 있다. 할 수 있었으면 진작에 했겠지.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 불가능 해보이는 것도 조금씩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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