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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본사 인사팀에서 공장 직원으로! 남편의 이직 이야기즐겁고 행복한 미국 생활/일기 + 여행 2022. 1. 21. 02:31
남편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껴져서 기록해보는 스토리! :) 여기저기서 언급한 적은 많은데 - 그걸 모아서 적어봅니다.
[남편의 교육 이야기]
바야흐로 거의 20년 전. 평범한 중산층에서 자란 고딩 마셜은 진로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 그냥 대학에 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셜의 부모님 또한 대학 나오신 분들이라 - 아버지는 학사가 있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했으며, 어머니는 교육한 박사로 근처 주립대학에서 일하셨다 - 온 가족이 대학에 다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어머니께서 주립대학에서 일하셔서, 학비가 50% 감면이라 재정적으로도 큰 인센티브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 썼던 대딩 마셜은 별 고민없이 언론학을 전공했다. 글을 잘 쓰니까 기자가 되서 앞으로도 글 쓰는 일을 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언론 업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2008년 9월 경제 대 위기가 시작된지 8개월 후인 2009년 5월에 졸업하는 바람에, 작은 도시에서 살고있는 마셜에게 제대로 된 취업의 기회는 별로 없었다.
대학교 3학년 때, 덴마크에 교환학생을 갔다가 알게 된 친구로부터,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선생님을 많이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졸업 후, 할 것도 없으니, 처음으로 아시아 국가에 가서 살면서 돈도 벌 겸 재미난 인생을 살아보고자 한국에 가기로 했다. 그 후 4년동안 중학교 영어선생님으로 일하면서, 돈도 벌고, 근처 국가들 여행도 많이 하고 (일본, 홍콩, 인도 등을 다녀온 듯), 돈도 많이 모았고, 언론학 전공을 살리는 것을 아직도 포기하지 못해서 - 동북아시아 3국의 정치/경제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대학원에서 love of his life ( = 나 ㅋㅋㅋㅋㅋㅋ) 를 만났고,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경제위기도 끝났고, 대학원 학위도 추가되었으나, 취업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일하고, 한국에서 공부한 내용이 미국에서는 별로 먹히지 않았다. 게다가 관심있는 분야 (언론, academy, think tank 같은 곳)은 워낙 학벌이 좋아야 갈 수 있는 분야여서 더더욱 심했다. 나와 결혼한 뒤, 내가 미국에 올 수 있는 비자 신청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1년 정도 다시 한국에 와서 영어선생님으로 일하면서 돈을 번 후, 나와 같이 미국에 다시 왔는데 당연하게도 사정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나 또한 제대로된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 힘들었다)
한국에서 알고 지냈던 한국에 오래 머물렀던 다른 미국 친구들이, 미국으로 돌아간 후 다들 대학원에 가서 대학원을 통해 바로 취업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와 마셜 둘 다 대학원에 가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내가 나름 대학나오고 석사도 있는 사람인데...이왕이면 회사에서 일하는 것으로 취업해야지"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그래서 둘 다 취업이 잘 되고, 논문 안써도 되고, 석사 수료까지의 기간이 짧은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나는 회계, 마셜은 HR 석사를 했다. 둘 다 이제 석사가 두 개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대학원 가느라 돈도 많이 쓰고, 학자금 대출도 많이 생겼다. (흙흙 돈 아까비)
마셜은 내가 먼저 취업해서 특정 지역으로 이사와서 이미 살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고 연봉을 많이 받는 학교를 통해서 하는 리크루팅은 하지 못했지만, 나름 특정 분야의 석사가 있으니까 나와 합류한지 3개월만에 나이키 인사팀에 취업할 수 있었다.
[남편의 괴로운 일 이야기]
처음 시작은 나름 순조로웠다. 나이키는 대부분의 직원을 계약직으로 채용했다가 정규직 자리가 나면 정규직으로 돌리는 고용정책을 사용하는데, 정규직 자리가 금방 나와서 계약직으로 머물러 있는 기간이 짧았다 (어떤 직원은 5~6년까지도 계약직으로 일한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마셜네 팀은 본사 건물이 아니라, satellite offices 중 하나에 있는데, 그게 마침 우리가 살던 아파트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어서, 출퇴근도 걸어서, 점심시간엔 무려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는 비교적 큰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초반에는 일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본인 팀이랑, "인사"라는 전반적인 분야와, 게다가 회사 자체의 문화, 분위기, 해야하는 일 등이 본인의 적성과 너어어어어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시작된 이후로 2년동안 일적으로 지옥같은 업무량에 시달렸다. 일도 지루하고, 반복적이고, 팀을 옮기려고 내내 다른 팀 여기저기를 쑤셔봤지만, 다른 팀들도 엄청 구려보였고,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
인사팀 자체에 여자가 너무 많아서 문화적으로도 잘 맞지 않았다. 무조건 동의만 해야하고, 아첨 및 과장이 심하고, 엄청 공격적이고 목소리가 커야하는 "미국 회사"의 코드와도 잘 맞지 않았다. 나이키의 특정 문화 (운동선수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거나, 중국한테 밉보이지 않으려도 벌벌 기는 거라던가...일단 나랑 남편 둘 다 스트릿웨어 및 나이키 물건에 큰 관심이 없다)에도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너 무슨일 해?"하고 물어봤을 때, "인사팀에서 일해"라고 대답하면 언제나 좀 쪽팔렸다고 한다.
2021년 후반기에 들어서는 15분에 한번씩 "때려칠까"를 고민할 만큼 정신적으로 엄청 힘들어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남인 내가 봐도 너무 훤하게 보였다.
[남편이 진짜 좋아하는 것]
남편은 평상시에 기계 다루고 손으로 직접 무언가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직접 자동차 엔진 업그레이드해서 슈퍼카 만들기를 시작으로, 모든 자동차, 자전거, 오토바이 수리 및 교체는 본인이 직접 다 했다. 최근에는 우드워킹에 빠져서 우리 집에서 필요한 모든 가구 등을 본인이 직접 만드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연습하는 중이다.
본인의 개인시간을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 보내면서도 "이런건 취미니깐, 취미로만 하는거고 일은 일이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물론 우드워킹을 전업으로 삼아서 현재 벌고 있는 돈 수준으로 버는 것은 (특히 지금 당장은) 아주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몸 쓰고 기계를 만지는 일을 하면, 적어도 책상에 앉아서 일하면서 괴로워하는 시간은 없어지지 않을까" -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기회가 찾아왔당!]
책상앞에 앉아서 자기혐오를 하며 인사팀 업무를 꾸역꾸역하던 어느 날. 우연히 트위터에서 동네 뉴스채널의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 기사 내용이 이 동네에 많은 반도체 공장 (인텔 및 인텔 하청 회사들)에서 공장기계를 관리하고 고치는 테크니션들을 고용하는데 아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워낙 어려워서 동네에 있는 커뮤니티 컬리지에 등록만 해도 (졸업이 아니라) 바로 고용해간다고 했다. 그리고 커뮤니티 컬리지 웹사이트에 의하면 졸업생들의 평균 연봉은 $55,000라고 했다.
평균 연봉이 그 정도면 남편이 현재 벌고 있는 것보다는 살짝 낮지만 큰 차이가 없어서 (네네 나이키는 임원이랑 엔지니어 아니고서는 다들 엄청 박봉받고 일합니다), 매일매일 스트레스 받고 자기혐오하면서 일하는 것보단 훨씬 정신적으로 건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 기사와 본인이 우리 회사에서 찾은 테크니션 포지션 링크를 보내왔다.
나는 원래 내 일은 더럽게 천천히 하고 미루지만, 남일은 재빠르게 실행에 옮기기를 잘하는데 ㅎㅎㅎ 그래서 바로 그 테크니션 포지션에 써있는 hiring manager 두 명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뜬금없지만 "인사팀에 있는 우리 남편이 테크니션 일을 해보고 싶은데, 이 분야에 아는 바가 없어서 그런데, 혹시 남편과 얘기 좀 해주실 수 없나요?" 하고 물어봤다. 한 명은 대답조차 없었는데, 다른 한명 (Mike)는 바로 "남편 이력서 보내보세요!" 라고 답장이 왔다. 그런 후 5분 후에 또 이메일을 보내서 "이거 내 전화번호이니 남편에게 전화하라고 하세요"라고 얘기해줬다. 그래서 부랴부랴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보냈고, 마이크와 간단하게 통화를 했다. 통화하면서 바로 이틀 후 인터뷰를 잡았고, 한 시간 전화 인터뷰를 한 후 이틀 뒤 합격통보를 받았다! 띠용!!!
남편에게는 흔히 요구하는 직업학교나 테크니션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마이크가 요구사항을 다르게 적은 포지션을 새로 열었어야 했었어야 했다. 그래서 최종합격까지 마무리 짓고, 연봉 레터를 받고, 일을 시작할 때까지 6주 정도 걸렸다. 신난 남편은 합격통보를 받은 그 날 바로 회사에 통보했고, 그 주 금요일까지만 딱 일했다 (불쌍한 남편의 팀장은, 남편의 퇴사통보 이메일에 답장으로 - 너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 그런데 바로 일 시작하지 않으면 제발 몇 주만 더 일할 수 있겠지...라고 물어보았다....). 그런 후 6주 동안 여러가지 우드워킹 프로젝트 및 새로운 차 사는 리서치를 하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새로운 일의 만족도]
지금 두달 정도 일 했는데 아주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다. 일은 역시 일이라서 뭐 대박 재밌고 너무너무 좋은 그런 건 아니지만, as far as work goes, 완전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일단 할 일이 딱 있으면 3~4시간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근무에 12시간이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간다고 한다. 그리고 코비드 덕분에 하루 두끼 밥도 공짜로 주고, 회사 카페테리아 밥 다양하고 꽤 맛있다 (예전엔 돈 주고 사먹어야 했고, 회사 카페테리아라 싸긴 하지만 그래도 한끼에 5~6불은 주고 먹어야 했다). 중간중간 팀 사람들이랑 스트레칭 하는 시간도 있고 (악 완전 귀여워!), 일 하는 중간 중간 뭐 잠깐 5~10분 기다려야 하는 시간 있으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랑 담소 하면서 재밌게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쉬프트로 일하는 스케쥴 진짜 짱이다. 너무 부러워서 나도 하고 싶다! 2주를 사이클로, 한 주는 3일 일하고, 다른 주는 4일 일한다. 그래서 "3일 일하기 - 3일 쉬기 - 4일 일하기 - 4일 쉬기" 스케쥴이다 (아 진짜 너무 좋음!!). 3일 일한 주는 3주 x 12시간 = 36시간 일하는 거지만 40시간 채워서 공짜로 돈을 더 준다 (보통이 한 주에 40시간 일하는 거니깐). 그리고 4일 일한 주는 4주 x 12시간 = 48시간이니깐, 40시간을 초과하는 거엔 1.5배 수당을 준다. (실제로는 이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데, 이렇게 계산하는 것 보다 항상 조금 돈을 더 준다!). 아무튼 결과적으론 돈도 나이키에서 일할 때보다 $10,000 정도 더 받는 것 같다.
테크니션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앞으로 발전시켜나갈 분야가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그리고 만족도도 꽤 높은 편이라 테크니션으로 수십년간 일하는 사람도 회사에 엄청나게 많다 (아주 좋은 징조). 그리고 테크니션에서 시작해서 엔지니어 학위를 따고 엔지니어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 우리 회사의 CEO가 그렇다! 직업학교 나와서 테크니션에서 시작한 시골 청년이 엔지니어로 커리어 변경하고, 학사, 석사 따고 Chief Technology Officer가 되었다가 결국 CEO가 된 완전 대박 자수성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남편은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고 한다 ㅎㅎㅎ)
남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 계속해서 열심히 일 하고,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많이 해서 - 너무 늦지 않게 남편을 은퇴시키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게 하는 것이 나의 목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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