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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 5년차 - 후회되는 점, 잘한 점!즐겁고 행복한 미국 생활/일기 + 여행 2021. 10. 4. 03:18
이제 미국 이민 5년 4개월차가 되었다.
짧은 기간 같지만 상전벽해처럼 많은 것이 변했다. 상황도 많이 바뀌었지만, 내 자신도 정말 많이 변했다. 걱정도 줄었고, 자신감도 늘었고, 더 성숙했고 (또는 성숙해졌다고 말하고 싶고), 더 내 자신을 사랑하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지난 날의 나를 돌아보면 "아~ 미국에 오고나서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싶은 행동도 많고, "이렇게 한건 정말 잘한거구나~" 싶은 행동도 많다.
앞으로 후회되는 점은 후회되지 않게 더 잘하고, 잘했던 점은 계속 똑같이 행동하도록 한번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후회는 조금 강한 단어고, 그냥 "다르게 했더라면 좋았을 걸" 정도. Things I could have done differently.
후회되는 점:
1. 미국인 남편한테 의존하기
남편은 미국에서 왔고, 나는 미국에 사는 것이 처음이니까! 미국에선 삶을 어떻게 사는지 몰라서 남편한테 의존을 정말 많이했다. 차를 살 때도, 이사를 갈 때도, 짐을 쌀 때도, 심지어 새로 살기 시작한 아파트에서 침대 매트리스를 살 때도, 나는 딱히 강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그냥 남편이 하는대로 - 잘 하겠지 하면서 따라갔다.
문제는, 남편도 잘 몰랐다는 점. 미국에서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자랐지만 항상 "어린이/청소년"으로 부모님 밑에서 살았던 것이고, "어른"이 된 이후 (대학 졸업 후)부터는 남편도 한국에서만 살았다. 결혼 한 부부로써, 어른으로써, 삶을 지탱하고 새로운 곳에서 사는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고, 이를 어떻게 하는건지, 어떻게 해야 잘 하는건지 모르는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내린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게한 것 같다. 나도 함께 해야할 일을 나눠서 조사하고, 알아보고,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했어야했다. 그러면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의 수준도 훨씬 높았을 것 같다.
학교를 다니느라 남편과 떨어져서 지냈을 때는, 나 혼자 알아서 다했다. 렌트 구하고, 인터넷 설치하고, 동네 여기저기 뭐가 있는지 알아보고, 대중교통 어떻게 타는지 조사하고 등등 모두 다. 알아서 다 하고, 다 잘했다. 진작부터 그렇게 했어야했다.
2. 미국에선 "원래 다 이렇게 해" 라고 쉽게 가정하고 생각없이 똑같이 따라하기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 그냥 TV나 영화를 통해서, 인터넷에서 읽은 것을 통해서, 남들이 말하는 걸 주워들은 것을 바탕으로 "미국에서는 원래 이렇게 한다"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이 된 자녀는 절대 부모님 집에서 계속 살지 않는다. 건조기는 필수다. 차는 1인당 한 대는 꼭 있어야한다. 결혼하면 여자는 남편 성으로 바꿔야한다. 이런 이런 보험은 꼭 들어야한다 등등 인생의 크고 작은 것들.
정말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었다. 미국처럼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많이 없다 (다른 나라도 내맘대로 못 살게 뭐있냐 싶지만 - 한국같이 동일민족/hierarchy가 뚜렷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압박이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 나의 상황에 맞는 대로,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면 되지 왜 "미국에서는 다들 이렇게 하는거다"라는 말에 영향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3.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고 쫄기
원래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미국에 처음 와서는 모르는 단어도 많았고 (특히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교과서에 안나오는 단어/표현들), 영어로 대화하고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로 대화할 때, 항상 살짝 쫄아 있었고, 당연히 쫄아서 자신감 없는 상태였으니 영어가 더 안나올 수 밖에 없었다. 누가 내가 한 말을 못알아들으면 내 영어탓인줄 알고 한껏 더 쫄았다.
미국은 이민자의 땅이라는 말이 너무나 적합하다. 이민자가 정말 많다. 그래서 모두가 완벽하지 않는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듣는데 최적화되어있다. 문법이 틀리고, 발음이 이상하고, 완전하게 딱 들어맞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의미는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한 말을 한번에 못알아들으면, 오히려 내가 미안한거지, 왜 저 사람 발음을 이상하게 하고 문법을 맞지않게 얘기하지?라고 생각하는게 절대 아니다.
특히 회사에 있으면 더더욱 이 점을 확신할 수 있다. 회사 동료들 중 거의 반?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팅도 잘하고,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일 처리도 척척 할 수 있고, 결정도 잘하고, 진급도 잘하고, 회사에서 엄청 높은 임원으로 솟아오를 수도 있다.
완벽한 영어가 필수인 것이 아니다. 쫄 필요가 전혀 없다.
이 3가지 모두 다 - 사실은 내가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구멍이다. 아직도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한테 의존하고, 아직도 미국에선 원래 이렇게 하는건가? 하면서 쓸데없이 선입견에 영향받고, 아직도 영어가 꼬여서 나올 때 자신감이 하락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놓으니깐, 나의 행동 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게 되니깐 참 좋다.
Switching gears...
그렇다면 잘한 행동은 무엇인가?
1. 새로운 도전/변화를 과감하게 하기
남편은 태어나고 자란 테네시를 떠나서 다른 미국 도시에서 산 적이 없다. 그래서 미국에 처음으로 갔을 때 충분히 테네시에서 살아보려고 했을 수도 있지만 - 우리는 과감하게 미국 대륙 반대쪽 LA로 이사가서 살기로 결정하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LA에서 살기로 한건 실수였다고 깨달은 순간 (그리고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깨달은 순간), 3개월만에 후다다다닥 대학원 입학서류를 준비해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LA를 떠났다. 다른 동네에서 (텍사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남편과 떨어져서 지내야하는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 그것도 도전으로 여기고 알아서 각자 생존 잘 했다. 학교를 끝나고 또 대륙 남쪽에서 북쪽까지 이사하고, 혼자 아파트를 얻고, 새로운 직장에 다녀야하는 변화가 있었지만 - 당연하게 받아드리고 잘 살아 남았다.
테네시에서 어떻게든 직업을 구해보려고 했을 수 도 있었고, "LA까지 왔는데 몇 년만 더 버텨보자 이사를 어떻게 또 가" - 하면서 머물러 있었을 수도 있었고, "어떻게 떨어져서 살아...대학원 가지 말자" 할 수도 있었고, "어떻게 저 멀리 이사를 또 가! 그냥 가까운 텍사스에서 취업하자" 할 수도 있었다.
사실 이렇게 했어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것 같긴 하지만 :), 그래도 도전과 변화를 과감하게 받아드리고, 빨리 실행에 옮기고, 변명과 구실을 늘어놓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한 태도는 아주 좋은 것이었다!
2. 미국 여기저기서 살아보기 (또는 구경하기)
얼마 전 아틀란타에 살고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의 남편이 인턴쉽을 하느라 여름동안 보스턴에 가서 살았는데, 보스턴이 아틀란타와는 정말 많이 다르고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는 도시 하나에서 살아보고 "미국은 이렇다"라고 결론내리려고 한 게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완전하게 동의했다.
그래서 나도 그 동안 살았던 곳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1번에서 말한 변화를 과감하게 수행한 태도의 좋은 결과물은 얼마 안된 기간동안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살아봤다는 점이다.
위에서 말한대로, 지난 5년동안 한 곳에서 6개월 이상 머무른 지역은: 1) 테네시 낙스빌, 2) 캘리포니아 LA, 3) 텍사스 오스틴, 4) 오레곤 포틀랜드이다. 추가로 남편은 내가 오스틴 사는 동안 일리노이 샴페인에서 살았다. 그 외에도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가족들을 방문하면서 (노스캐롤라이나, 실리콘밸리 등) 그 동네가 어떤지 알아보았고, 이사를 다닐 때도 로드트립으로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지형이 어떤지, 삶의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회사에 입사할 때 미국에 있는 4개 캠퍼스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그 동안 여러 곳을 방문해본 결과 어느정도 "나와 남편이 즐겁게 잘 살 수 있는 도시"가 어떤 것인지 조건이 있었고, 그 조건에 잘 부합하는 오레곤으로 골라서 이사왔다. 그리고 대.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3. 한국인/한국기업/한국슈퍼 등에 의존하지 않기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보통 미국 기업에 취업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영원히 무직일 수 없으니, LA에 많고 많은 한국 기업 /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업 /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 (코리아타운 뱅크텔러 같이) 등에 결국 지원해서 몇 군데에서 일하게 되었다.
미국까지 와서 한국인이랑, 한국일 하면서, 한국어로만 대화하면서 일하는 점이 개인적으로 괴로웠다. 미국 내의 한국 vs 진짜 한국 사이에는 나름 문화차이가 있어서 (미국 내의 한국이 더 보수적이고 시간이 과거에 멈춰있는 느낌), 그것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회사에 대한 로열티도, 동료나 상사에 대한 존경도, 일에 대한 열정도 아무것도 없어서 회사를 다 금방 관두었고 - 그러니 사실 나를 고용해준 회사에게도 결과적으로 해가 되었다.
이 일을 겪은 후로는 다시는 한국과 관련된 것에 의존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하기 싫었던 석사도 다시 하고, 무조건 미국 기업에만 지원하고, 영어를 갈고 닦는데 더더욱 시간을 써서 결국 미국 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미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미국에 사는 각종 사람들과 일을 하니, 미국에 진짜 잘 적응한 느낌이다. 미국에 진짜 "산다"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한국기업에서 주는 연봉의 몇배가 넘는 돈을 지금 벌고 있고, 이력서 내역도 착착 쌓이고 있고 (현재 다니는 기업에 잘리지 않는 이상 뼈를 뭍을 생각이지만), 회사 일과 work and life balance에도 대 만족이다.
취업 뿐만 아니라, 나는 한국슈퍼, 한국가게, 한국은행 등 일상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거의 의존하지 않는다. 그냥 일반 슈퍼에서 팔지 않는 기본적인 한국식재료 (고춧가루, 국간장, 당면 이런거)를 사는 것 외에는 한국 슈퍼에도 잘 가지 않는다. 미국음식, 아시아음식, 중남미음식, 중동음식, 유럽음식 등 아직 먹어보고 만들어보지 못한 것이 수두룩빽빽한데, 비교적 관련된 식당이나 식재료를 잘 구할 수 있는 미국에서, 굳이 한국음식만 고집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한국음식은 왠만한 거 다 먹어봤자뉴...안먹어본거 먹어보고 싶다.
아무튼 이렇게 한국 물건, 한국 기업, 한국인이 해주는 서비스에 의존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미국의 일상 생활에 대해서 더 잘 배우고, 일상에서 사용되는 용어나 표현도 더 많이 배우게 되고, 미국에 정착이 더 빠르고 쉬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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