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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사는 삶이 풍부한 삶은퇴 빨리하기 FIRE! 2021. 10. 1. 02:53
티스토리의 다른 탭에서 ("스토리"였던 듯)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 포스팅을 랜덤으로 추천해주는 걸 발견했다. 클릭했을 때 딱 첫번째로 보인 포스팅이 그랜드 캐년에 간 이야기여서 - 나도 가고싶은 마음에 한번 읽어보았다.
사진도 많고 좋은 포스팅이었으나, 글쓰신 분의 여행 스타일이 나와는 전혀 달랐다.
그 분은 더운 아리조나 날씨에서 에어컨 잘 나오는 차 타고 다니면서 구경하면 되는데, 굳이 물통을 들고 다니면서 그랜드 캐년을 걸어다니는 미국인들이 이해가 안간다는 식의 감상을 올렸다.
나는 그분이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인"의 입장이었다. 아름다운 그랜드 캐년을 실제로 걸어다니면서 천천히 풍경도 감상하고, 가까이에서 또 멀리에서 여러 관점으로 캐년을 관찰하고, 신기한 식물, 곤충, 및 동물도 발견하고, 더워서 땀 뻘뻘 흘리고 힘들어서 죽을뻔한 잊지못할 경험을 쌓아야지!! 차 타고 운전해서 잠깐씩 내려서 구경하면 그게 무슨 구경인가!
뜬금없이 남의 포스팅에 혼자 난리난거지만 ㅋㅋㅋ 이렇게 나는 (고생이지만) 천천히 감상하는 여행스타일을 추구한다. 그래서 산에 백팩킹하러 가는 것이 너무 좋다. 무거운 가방 이고지고 등산하는 것 정말 힘들지만, 발로 직접 등산하면서 산의 다양한 면모를 감상할 수 있다. 깊은 산속에서 씻고, 밥먹고, 자면서 자연을 천천히 최대한 만끽하는 것이 참 재밌다.
무언가를 천천히 하는 것은 여행뿐만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밥은 사먹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먹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차 타고 나가서 테이크아웃 음식을 사오는 게 시간을 훨씬 적게 쓰고, 노력도 적다. 하지만, 직접 만들어먹으면 재료 하나하나가 맛에 어떠한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음식을 더욱 즐기면서 먹을 수 있게 되고, 다음에는 더 잘 만들 수 도 있게 된다.
집을 고치거나 리모델링 할 때도, 시간이 오래걸리더라도 천천히 직접하는 편이 훨씬 즐겁다. 그 과정에서 평생 써먹을 기술도 배우고, 돈도 절약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를 만들 수 있다.
소비가 아닌 생산이 주는 행복 포스팅 (https://brownenglish.tistory.com/362)에서도 비슷한 관점에 대해서 생각해본 바가 있다.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직접 생산하는 것이,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보다 훨씬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
나는 수퍼에 갈 때, 최대한 걸어간다 (대박 무거운 걸 살게 100%이지 않는 이상). 걸어가는데 18분, 쇼핑하는데 한 20~30분, 다시 걸어오는데 18분 정도 걸린다. 내 남편은 질색한다. 차 타고 가면 3분이면 가는 거리를 왜 걸어가냐고 한다.
나는 걸어가면서 이것 저것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걸어가면서 주변을 관찰하고 (아쉽지만 쓰레기가 정말 많구나...가 항상 관찰결과이다), 차 타고 있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운동도 된다 - 특히 무거운 것을 지고 돌아오는 길은 아주 살짝 오르막길에도 허벅지 힘이 꽉 들어간다.
차 타고 빨리가도, 물건 사는데 드는 시간은 똑같고, 주차공간 찾고, 길 건너는 사람들 기다리고, 신호 기다리고 그러다보면 실제로 절약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장 보러 가는데 20분 절약해서, 아낀 20분 동안 무엇을 할것인가? 그냥 천천히 걸어가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하늘도 쳐다보는 시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즐겁다.
그렇다고 모든 걸 천천히 느리게 비효율적으로 한다는 뜻은 아니다. 회사일 같이 하기 싫은 것은 무조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빨리 결과물을 가져오려고 노력한다. 하루종일 그렇게 일하면, 퇴근하고 나서는 뇌의 용량이 남아나는 것이 없는 느낌이다 (영어로 일하니깐 더더욱). 그럴 때 걸어서 슈퍼에 간다던지, 천천히 빵을 구워 먹는 다던지, 목적지없이 긴 산책을 가면서 다른 사람들 집도 구경하고, 날씨도 만끽하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대화하면 (남편이랑 같이 가면), 아주 좋은 발란스가 된다.
현대사회에서 자본주의에 사는 사람이라면, 빠르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생활 (특히 직장생활)을 피해가기가 참 어렵다. 그럴수록 더더욱 정신없이 돌아가는 TV나 미디어, 빨리빨리 볼 것만 보고가는 여행 대신,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참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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