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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째 알란이 출산기
    즐겁고 행복한 미국 생활/임신일기 2023. 8. 16. 15:20

    1년도 전에 메일 draft로 적어서 남겨놓은 걸 이제와서 옮겨와서 기록해 놓는다.

     

    2022년 5월 24일 화요일 - 36주 2일차

     
    이날 밤도 1시 반쯤에 깨서 다시 잠들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옆으로 누워서 자보려고 했는데 자다가 갑자기 쑥- 하고 물 같은게 질에서 나온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에 가서 확인해보니 팬티가 다 젖어있었다. 냄새를 맡아보니 좀 오줌 냄새 같기도 하고... 그날따라 애기가 진짜 심하게 방광이랑 방광 주변 신경을 눌렀었어서, 그것의 부작용으로 쉬가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았다. 일단 패드 두꺼운 것을 차고 다시 누워서 더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근데 더 안나와서 일단 자기로 했는데, 불확실성 속에서 생각이 많아져서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 그 동안 싸구려 이불을 덮고 자다가, 마셜의 지속된 요청으로 미국 인생 처음으로 엄청 좋은 구즈다운에 비싼 이불커버 및 침구류를 사서 (내 기준으런 엄청 좋은거긴한데, 남들이 보면 그게 뭐가 엄청 좋냐며 비웃을라나? - 이불 세트 총 $500불 수준) 처음으로 그 침구류에서 자는 날이었다. 그래서 오줌인지 양수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침대에 뭍을까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 더 잠이 안왔다.
     
    겨우 새벽 4시쯤에 잠들었다가 슈리 회사알람 시간인 7시쯤에 깼다. 나는 보통 더 자는데, 슈리가 회사가기 전에 병원에 가야하는건지 어쩐건지 확인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나도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또 질에서 물이 주르륵 나왔고 화장실에 가서 확인해보니 물이 분홍색이었고 휴지는 생리 살짝하는 것처럼 빨겠다. 이건 100%겠다 싶어서 일단 advice nurse 에게 전화해서 병원에 가야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물어보고 바로 병원에 갔다.
     
    아침 7시 반쯤 병원에 들어가는데 바로 앞에 만삭의 임산부가 active labor중이라며 접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렸는지 스타벅스 봉투랑 커피를 들고 있었다 ㅎㅎㅎㅎㅎㅎㅎ나처럼 첫째애가 아니라 완전 여유가 있는건가? 아니면 스타벅스를 그렇게 좋아해서 산통을 느끼는 와중에도 중간에 들려서 사왔어야했나? 뭔가 신기했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산부인과 응급실 사람들을 만나서 양수가 터진건지 아닌지 보기로 했는데 (검사하는 3가지 테스트가 있음), 검사하려고 엉덩이를 의자 아랫쪽으로 내리려고 하는 순간 피가 줄줄 나왔다. 그래서 검사를 그냥 안했다. 그냥 저절로 산통이 시작될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유도분만의 옵션이 있는데 양수가 터지면 감염위험이 있어서 유도분만을 추천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 분만실에 들어갔다.
     
    첫 한두시간은 IV 끼우고, 서류에 사인하고, 코비드 검사하고 등등의 절차를 밟으면서 자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아무일 없었음). 이제 피토신 (옥시토신 IV 상품명)을 맞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우리 양수 터진건지 아닌지 한번만 더 확인하자고 했다 (아까 테스트 그냥 스킵했으니까). 간단 면봉 스왑을 했는데 검사결과가 inconclusive 였고 그래서 더 깊이 스왑을 했는데 또 inconclusive 였다. 애기 낳을 마음의 준비 다 되었는데 갑자기 "아- 양수 아니라 오줌이었네요. 집에 가세요"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드디어 검사 결과가 나왔고 양수인 것이 확정되었다.
     
    2시부터 피토신을 맞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시간에 2ml 들어가는 속도로 시작했다가 30분에 한번씩 4, 6, 8이렇게 늘렸다. 한국 시간으로 아침시간인 4시부터 가족한테 화상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5시쯤에 마지막으로 엄마랑 통화했는데 그때 벌써 진통 오면 인상 살짝 쓰고 얼굴이 찌그러지는 정도의 고통이 있었다. 처음부터 진통이 2분 간격으로 왔고 매번 고통이 심해졌다. 중간에 간호사가 와서 진통이 너무 자주와서 좀 줄여야겠다고 피토신 속도를 줄이고 그냥 물인 IV를 왕창 때려부었는데 간격이 전혀 줄지 않았다.
     
    7시쯤 되었을까 ? 고통이 너무 심해서 자궁경부가 좀 열렸으면 무통을 맞고 싶었는데, 한 30분 있으면 낮/밤 쉬프트가 바뀌는 시점이라 밤 쉬프트가 오면 그때 자궁경부가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한 15분 더 진통을 겪는데 다음 쉬프트 오기 기다리다기 힘들 것 같아서 fentanyl 을 한방 맞았다. 마셜은 fentanyl 이 워낙 중독성이 강한 약물이라 안맞았으면 했는데 나는 그냥 놔달라고 했다 ㅎㅎㅎ 확실히 맞으니까 it took the edge off the pain but 진통이 강해지는게 너무 빨라서 한 다섯번? 더 진통하니까 원래 강도로 금방 돌아갔고, 그때부턴 숨 쉬기는 커녕 비명을 지르는 지옥같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에피듀럴 (무통)은 언제부터 맞을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에피듀럴을 맞으면 labor가 천천히 진전되서 경부가 6센치 열리기 전까진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지옥 속에서 새로운 쉬프트가 와서 내진을 할 때까지 버텼는데 내진 결과 무려 9센치가 열려 있었다!!! 그래서 빨리 에피듀럴 달라고 했다.
     
    진통 하나하나가 진짜 너무 아팠고 (너무 아파서 정말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마취과 선생님이 병실까지 와서 서류에 사인하고 주사 연결하고 약 효과가 올때까지 진통 10번?은 더 했어야했는데 진짜 그러다가 죽을 것 같았다. 숨쉬기는 커녕 비명을 지르며 살아남기가 급급한 정도...남은 양수도 꿀렁! 다 터진 다음 등, 배까지 완전 물이 다 쏟아져나오며 역류했고, 똥도 나오고, 분만이 거의 시작했음이 완전 느껴지고, 아무튼 진짜 혼돈과 최악의 고통의 순간이었다. 34살 인생에 이런 고통은 비슷한 근처도 느껴보지 못했음.
     
    진통의 느낌은...진짜 세상에서 제일 극심한 설사가 났는데 그걸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고 그 고통을 100%겪어야하는 느낌 곱하기 10배인 것 같다.
     
    그 와중에 에피듀럴 맞고 효과가 나기 시작해서 급 천국이 왔다. 갑자기 엄청 평온해졌다. 그새 이제는 다리를 잡고 힘을 줘야하는 시점이 왔다. 전혀 힘들지 않았고 무통 아래에서 힘주는건 몇 시간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힘을 줄 때 머릿속으로 10을 세면서 최대한 길게 힘을 줬다. 그냥 잘한다고 격려하는건지 진짜 인건지 모르겠는데 엄청 잘한다고, 한번 푸쉬할 때마다 애기가 현저하게 움직인다고 칭찬해줬다. 그래서 더 열심히 오래 힘을 줬다. 에피듀럴 때문에 고통은 없었지만 진통이 시작되면 아랫도리 구멍들에 압력이 점점 증가하는 걸로 짐작할 수 있었다. 힘주는 동안은 너무 평온하고 농담도 하고 남편한테 사진 좀 이런거 저런거 찍으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애기 머리가 나오니까 진짜 그게 질 안에 느껴졌다. 그리고 애기 머리가 다 나오는 느낌이 퐁 하고 들었음. 애기 나오자마자 대충 닦아서 가슴에 올려주었고, 나머지 플라센타랑 찢어진 질을 꿰매는 동안 아기를 쳐다보면서 애기한테 말하면서 놀았다.
     
    애기는 유도 시작한지 7시간만인 밤 9시에 알란이가 태어났고, 3.03킬로에 건강하게 태어났다.
     
    일단 분만한 곳에서 한 시간 정도 누워있었고, 그 동안 간호사가 출혈량을 10분에 한번씩 체크했다. 출혈이 많이 줄어서 이제 일반 병실로 옮겨가는데 - 갑자기 휠체어에 앉으라고 했다. 아니...아랫도리가 다 찢어져서 아파 죽겠는데, 어떻게 앉나요???? 근데 앉으라고 하니...앉았다. 그랬더니 갑자기 또 아기를 안으란다!!! 아기를 올려놓으니 그 3킬로로도, 앉아있는데도, 골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근데 또 하라고 하니깐 그냥 무너지는 골반의 고통을 겪으면서 병실로 옮겨져갔다.
     
    미국 병원엔...nursery (아기 돌봐주는 곳)이 많이 없다. 우리 병원도 그랬음. 그래서 밤 9시에 출산했는데, 그날 밤부터 바로 육아를 시작했다. 나는 움직일 수 가 없어서 남편이 해주는데 - 보통 신생아는 자느라 바쁘다는데, 알란이는 첫날부터 엄청 찡찡대면서 잠을 안잤다. 그래서 한시간에 한번씩 안아줘야 했다. 마셜이는 아기에게 우유병으로 donated breastmilk를 먹였고, 나는 젖이 빨리 돌으라고 그 때마다 혼자 앉아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젖에 유축기를 가져다대고 stimulus를 주었다.
    아기가 미숙아라서 보통은 1박 2일 입원하는데, 하루 더 있으면서 아기를 지켜보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한두시간마다 들어와서 산모 체크하고, 알란이 체크하고, 의사가 와서 또 뭐 물어보고, 등등등 그렇게 24시간을 하니 잘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 와중에 알란이는 디지게 안자서 항상 안아주고 있었어야 했음. 보호자용 침대도 너무 작아서 마셜은 뭔가 침대에 대각선으로 누워도 고개를 꺽고 이상하게 자야했고, 모든 것이 너무 불편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근데 마지막 날에도 막 11시부터 갈 준비 다 했는데, 의사의 최종 sign off를 못받아서 (왜인지 모르겠지만 의사가 없었음), 거의 2시 다 되어서 겨우 집에 왔다.
     
    알란이는 미숙아라서 모유수유도 잘 못했고, 그런데 먹는 양이 많지도 않았고, 잠도 혼자 절대 자지 않고 무조건 안아줘야 했기 등등 결과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아기였다. 나도 너무 모든 것이 처음이고, 정답이 없고,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고, 걱정도 많이 되고, 아기도 어렵고 등등의 이유로 점점 깊은 우울증 및 불면증에 빠지게 되었다 (이거슨 다른 곳에서 정리했음).
     
    하지만, 지금 1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어렵게 키울 것이 없었는데, 내가 내 병을 키운 느낌이다. 그리고 그 때 우울증 때문에 알란이를 충분히 케어하고 사랑해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그리고 이제 모든게 지나고 나니, 그렇게 고생하는 것도 나름 추억이고, 나를 더 강인하고 한 단계 더 성숙하게 해준 아주 고마운 경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사랑 알란이!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랑 듬뿍 주면서 잘 키워줄게! (라고 써놓았지만 알란이는 어린이집에 보내짐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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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잉글리쉬와 함께하는 고급영어 공부 :)